마침내, 선영이 인천으로 돌아온다. 선영은 자동차가 아닌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에서 바닷가로 향해 간다. 영화는 그 모습을 트레킹 숏으로 담는다. 그 장면은 내게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선영을 선영이란 존재 자체로 놓아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선영이 원했던 것은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보다 아마 자신의 유년과 청년시절을 보낸 인천으로 돌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바닷가에 도달하는 순간 그 누구보다 평온한 모습의 선영을 우리는 상상하며 엔딩을 맞이한다. ​

감독님과 프리미어 상영전 영화에 대한 생각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간단한 메시지에 많은 감정이 전달되었다. 결론은 영화가 조금은 아쉽다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전작인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이번 작품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감독님의 메시지에서 조금 마음을 내려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영화를 완전히 다 본 순간 감독님이 얼마나 겸손했는지를 깨달았다.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다]는 개인적으로는 전작보다 마음에 더 와 닿는 작품이었다. 전작이 시골학교의 아이들과 자연,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에 집중한다면 이번 작품은 장애를 가지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선영이라는 개인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가진 신체적 결핍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 정신질환을 가진 형, 그리고 자신과 가족을 혼자 뒷바라지하는 성하지 않은 몸을 가진 어머니를 그린다. 전작이 아이들 주변의 세계에 대한 작품이라면 신작은 개인의 삶의 여정의 한 페이지를 다룬다. 그런데 관찰자의 대상이 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이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웠다.

​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영화가 그리는 화면이나 배경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 소소하게 개인에게 덧칠된 현실의 기록에서 미묘하게 새어나온다. 영화는 그 어떤 사회적 갈등과 가족 구성원의 불행의 역사를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니 ‘왜‘를 구태의연하게 묻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 인물과 사연에 이해와 공감이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 영화는 백석의 시로 시작하며 백석의 시의 정서로 마무리된다. 백석이 쓴 시에 기대어 보면 선영의 여정은 불행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장애를 가진 선영과 그와 비슷한 처지를 가진 친구가 세상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수많은 용기가 필요함을 나직이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선영은 구구절절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우린 그가 왜 삶의 불행을 토로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보통의 영화와는 다른 길을 선택하여 그 행위를 배제하게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이 작품은 심심하고 명확한 주제 의식이 부재하였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인물의 쳇바퀴 같은 삶에 여운이 따르며 그가 만나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따스한 시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 작품은 비로소 아름다움에 다가선다.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은 가끔은 눈물 짓게 만들고 가끔은 웃음짓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어떤 이의 슬픔이며 한탄이며 외로움이 없어도 그 모든 감정을 감싸는 삶의 여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난 누군가가 생을 향해 따라가는 여정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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