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은 고시에 합격해서 가족을 데리고 고향 인천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고된 노동으로 몸이 상하고 아버지는 매일 술에 의지하다가 결국 쓰러진 채 발견되고 형은 군대에서의 불미스러운 일로 정신질환을 갖게 됩니다. 선영은 사고 이후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고 싶어 했고 사법고시가 없어진 후에도 변호사를 꿈꾸며 법원행정고시를 보거나 로스쿨에 지원합니다.

가족들은 정기적으로 선영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아버지를 보러 갑니다.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휴대전화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그리고 이런 대화에 목이 멥니다. “설날인데 오는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어서 아버지를 보러 왔다고, 그리고 이제 다시 집에 돌아갈 거라고. 열 살 때 알았습니다. 불행은 전염병 같다는 것을요. 불행에 감염될까 봐 사람들은 불행한 사람들을 피합니다.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천과 청주에 있는 선영의 친구들.

영화 속에서 인천의 친구들은 비장애인이 많았고 청주의 친구들은 장애인이 많았습니다. 혼자 추측해 봅니다. 인천의 친구들은 선영과 유년을 함께 보냈고 선영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닥쳤을 때에도 여전히 어렸기 때문에, 그리고 청주의 친구들은 장애라는 상황을 함께 공유하기 때문에 관계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요.

오빠가 이 깜깜함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고 생각하며 사춘기를 보냈습니다. 지나고 보면 너무 큰 기대였고 너무 거창한 희망이었습니다. 오빠가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판사나 검사나 변호사가 된다고 해서 우리 집이 갑자기 부유해진다거나 저를 포함한 다섯 동생들의 인생 여정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희망 덕분에 깜깜함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선영의 집에서는 선영이 우리 오빠 같은 사람이었어요. 갈 데가 없어서 아빠를 보러 갔던 그 설날에 아빠는 선영에게 말합니다. 형 취직 좀 시켜 주라고. 엄마는 허탈하게 웃지만 선영은 알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스쿨 지원서를 작성합니다.

오빠는 사법고시에 실패했습니다. 선영은 여전히 도전 중입니다. 그렇더라도 희망은 저희 집에서도 선영의 집에서도 톡톡히 제 몫을 해냈고 해내고 있습니다. 애초에 설정한 목표값에 닿지 않더라도 그리고 밖에서는 깜깜해 보이더라도 그 안의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만들고 찾아가며 살아갑니다. 긴 시간 동안 선영의 시간을 카메라를 들고 동행한 고한벌 감독은 그래서 영화의 제목을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라고 붙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 깊이 공감합니다.

영화 말미에 다른 의미로 목이 메는 순간을 한 번 더 만났습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에게는 당연할 수 있는 어떤 순간이 화면 안에 펼쳐졌을 때 목젖은 뜨거워졌지만 무척 기뻤습니다. 영화는 꾸밈없고 담담합니다. 고른 호흡으로 묵묵히 주인공들과 함께 걷는 감독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 냈습니다. 사실 저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다는 것을요.

유려한 화면과 파격적인 구성, 격정적인 순간을 품고 있는 강한 영화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시대지만 다큐멘터리영화계의 최전선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2025년에 같은 마음을 가진 감독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7회째를 맞는 올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 일대에서 열립니다. 수많은 훌륭한 다큐멘터리영화들을, 그리고 <가끔은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를 꼭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출처 : 2025년 10월호 월간지 <작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