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운동회가 열렸고 나는 늘 운동회 촬영을 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촬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고 나는 늘 1년 동안 부쩍 자란 아이들 모습에 뿌듯해하면서도 그 1년을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 늘 안타까웠다. 고한벌 감독의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은 그런 안타까움이 일거에 해소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DMZ다큐멘터리영화제 강진석 프로그래머가 추천해준 영화인데 강진석 프로그래머는 내게 “《아이들》을 만든 감독이라서” 이 영화를 추천한다고 했다. 내가 2010년에 발표한 《아이들》에는 주인공의 초등학교 1학년까지가 담겨있다. 《아이들2》는 그 후의 시간을 담고 있는데 학교에 들어가지 못해서 타임라인이 듬성듬성 비어있다. 학령기에 접어들면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카메라가 학교 안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한벌 감독 덕분에 학교 안에서의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월악산 아래 있는 덕산초등학교에는 6년 동안 한 반으로 지낸 15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의 생활은 다채롭다. 캠프파이어는 기본이고 냇가에서 수영을 하고 가까운 도시에 나들이를 가기도 한다. 젊은 담임선생님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은 아슬아슬할 정도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고한벌 감독은 이 사이에 과감하게 뛰어든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5년 동안 한 학급에서 지내왔으니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지만 그만큼 쌓인 갈등도 많다. 5학년 때의 여자담임이 그대로 6학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선생님이 담임을 맡게 된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담임인 윤재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가 처음 담임을 맡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안됐는데, 여학생들은 둘러앉아 윤재 선생님 흉을 보고 있다. 흉을 보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의식하지만 비밀을 지키라는 당부를 한 후 다시 담임선생님 흉을 본다. 아이들은 그렇게 고한벌 감독의 카메라를 믿고 있었다. 그 비결이 뭔지 궁금했다. 고한벌 감독은 아이들에게 “너희는 이 시절을 점점 잊겠지만, 나중엔 분명히 아름답고 소중하게 보일 것”이라는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열심히 설득하고 거기에 더해 지워달라는 부분은 무조건 지우겠다는 약속까지 한 후에 촬영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또다른 주인공인 윤재 선생님은 영화의 의도를 이해하고 끝까지 같이 가자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내밀하면서도 아름다운 영화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이들의 시간을 밀접하게 담은 영화들을 보다 보면 우리는 아이라는 존재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갈등이 촉발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띠게 토론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울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사과를 하고 그 과정들에 빠져 들다 보면 누군가를 이해할 때에 연령을 고려하는 일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윤재선생님의 직설적이면서도 솔직한 태도에서도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 한 장이 떨어지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용인할 부분은 어디까지인지, 관계의 평등함이라는 것은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해서 자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영화에는 ‘색깔도둑’이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검은 가면을 쓴 어른이 아이들과 한 화면에 처음 등장할 때 나는 헛 것을 본 줄 알았다. 하지만 검은 가면을 쓴 사람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나와서 아이들이 피아노를 칠 때 옆에 가만히 앉아있거나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때 한 쪽에 서 있곤 했다. 뒤로 갈수록 색깔도둑은 더 자주 등장을 하고 그동안 색깔도둑을 모른 척하던 아이들은 갑자기 색깔도둑에게 누구냐고 묻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한다. ‘색깔도둑’의 존재와 그 존재를 출연시키는 영화의 형식이 너무 낯설었는데 상영장에서 감독으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고한벌 감독은 친구들의 제안에 힘입어 이 영화를 극영화로 만들어보려고 했다. ‘색깔도둑’이라는 존재가 등장해서 아이들의 색을 빼앗고 생동감을 떨어뜨리는 내용이었다. 영화는 결국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지만 색깔도둑은 남았다. 그리고 색깔도둑이라는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중간에 위치한다. 고한벌 감독은 아이들이 연기를 한다고 해서 꼭 거짓이 아니고, 오히려 그 경계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던 감독은 나중에는 아이들과 같이 논의하면서 장면들을 만들어 간다. 1년의 시간동안 선생님과 아이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는 변화해가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 또한 변해간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아주 아름다운 순간이 펼쳐진다. 귀엽다가 얄밉다가 사랑스럽다가 마침내 한 명 한 명의 얼굴들이 가슴에 남게 되는 아주 예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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